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로마이단 혁명 (문단 편집) == 상세 및 진행 요약 == 2013년 11월 21일, 당시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이었던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당시 진행 중이던 EU 가입 논의를 전면 중단하고 친러 정책을 천명한 것에 반대하여 수도 [[키이우]]를 포함한 서부 우크라이나를 중심으로 일어난 대대적인 시위가 유로마이단 혁명의 시발점이다.[* 친러정책으로의 노선 전환이 촉발 요인이긴 하지만, 야누코비치의 독단적 국정운영과 부정부패로 인해 축적된 불만이 촉발요인을 통해 터져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시위 군중들에게 실탄을 발포하는 등 야누코비치 정부의 [[폭동적 시위진압]]과 이에 자극 받은 시위대의 봉기로 시위는 유혈 사태로까지 격화되었다. 여기에 야누코비치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파괴하고 경찰의 범죄행위를 대놓고 합법화하는 반시위법 패키지를 입법 절차를 무시해가며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의회에 전자 투표 시스템이 있었음에도 거수로 투표를 진행했다.]. 2014년 2월 경찰은 자동소총과 저격총을 동원해 무차별 발포를 하면서 시위는 절정에 달했다.[* [[AK-74]]로 실탄을 자동사격 하는 경찰과 조준사격에 맞고 쓰러지는 구급대원, 조준사격을 당했으나 주변에 있는 진압방패 덕분에 목숨을 구한 정교회 신부등의 모습이 카메라를 통해 생중계됐다. 또한 외신의 구급대원 인터뷰에 따르면 총상부위가 대부분 머리나 가슴이였다. 참고로 대테러부대를 포함한 경찰들은 민간인을 상대로 하므로 사살이 아닌 체포를 우선시 하는것이 정상이다.] 이때를 기점으로 민중들의 목적이 친러정책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에서 독재정권의 축출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적 혁명으로 급변했다. 결국 야누코비치와 그 측근들이 키이우에서 러시아로 야반도주 하면서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독재정권을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모든 의원의 만장일치 표결에 따라 우크라이나 최고 의회는 야누코비치를 [[탄핵]]하고 새로운 과도정권을 수립하였다. 친서방 정책에 회의적인 지역들에서도 야누코비치는 이미 지지를 잃어버렸기에 대부분의 지자체와 군경은 과도정부를 인정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오래 전부터 [[우크라이나]]를 속국으로 여겨온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자신들의 세력권을 이탈하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이미 2013년에 야누코비치의 무능한 대처를 보고 실망한 [[러시아]]는 친러정권 유지를 포기하고 직접적인 개입과 하이브리드 전쟁을 통하여 '말 안 듣는' 우크라이나 민주정부를 뒤엎기로 결정했다. 이후 일어난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2014년 크림 위기]]로 [[러시아]]는 자신감을 얻었으나 뒤이어 발발한 [[돈바스 전쟁]]은 러시아의 뜻대로 풀리지 않았고, 이는 결국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이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